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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한국소설

고래 - 천명관 / 문학동네

by actor_zoo 2013. 3. 13.


오랫만에 수작을 읽은 듯하다. 2004년 작품인데 이제야 말이다.
이 소설은 한 사람의 복수극이다. 그런데 그 복수자와 복수의 대상자는 일면식도 없으며 최후의 대상자인 금복의 딸 춘희는 동시기의 인물도 아니다. 작가는 박색과 신분의 소외를 '돈'이라는 것으로 풀려했던 한 인물에서 시작하여 작은 산골에서 넓은 바다, 큰 고래, 힘이 센 사내를 동경하던 그래서 결국은 자기가 큰 고래와 힘센 사내로 화(化)한 또 다른 인물, 그리고 그 인물의 혈육인 반생이 춘희까지 이어간다. 그 이음새에는 '돈'이 있으며 그에 따른 복수는 한치 흐트림 없이 이루어진다. 
작가가 시종일관 끌고 가는 작가시점의 이 소설은 기존의 소설 문법과 차이가 있다. 첫째는 시대를 허무는 작가의 해설이다. 이는 독자로 하여금 인물과 배경을 그리는데 혼선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긴 문장(이것도 이 소설의 특징이다.)의 해설과 시대를 거슬리는 인물묘사들이 흡입력이 있다. 둘째는 판타지다. 소설은 시대를 옆구리에 꾀어 차고 있지만 작가의 목적에 따라 인류에서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을 발생시킨다. 이것은 작품의 상징적 배경이 되어 독자에게 마치 영화를 보기 이전에 극장의 분위기에 먼저 매료되게 하는 듯한 흥분을 준다. 셋째는 그럼에도 구시대적 단어들을 선택하여 글을 채우고 있다는 것이다. 아마도 사전을 들고 이 소설을 본다면 더욱 재미가 배가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허술한 듯하지만 탄탄한 스토리텔링의 구성이다. 모든 인물의 현주소는 과거와 연결되며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다. 약간의 단서가 인물에게서 흘러 나오면 작가는 그 이유를 주석을 달듯이 채워나간다. 때로는 소설의 테두리를 벗어나면서까지.
개인적 아쉬움이 있다면 금복에 많은 부분(하지만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을 이해하나)을, 그리고 금복의 활약상에 춘희의 모습이 상대적으로 너무 외소하여 이후 춘희만의 시간이 단조롭고 지리한 맛이 없지 않았다. 그리고 이 소설은 소위 문학전집에 묶여있는 여느 소설처럼 두 번 이상을 보고 싶은 마음이 없다. 왜냐면 늘 똑 같은 느낌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작가가 너무나도 뚜렷한 선을 끄어 접근할 수 없는 영역이 이 소설 내부에 많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