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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미덕인지 누가 정의할 것인가? -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by actor_zoo 2010. 8. 11.
출처 YES24 채널예스 | http://www.yes24.com/chyes/ChyesColumnView.aspx?title=005031&cont=4807
[진중권의 독창적인 책 읽기]무엇이 미덕인지 누가 정의할 것인가? -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이 책에서 다루는 것은 제목 그대로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이다. 마이클 샌델은 다양한 판례와 사례를 들어 우리의 삶에서 정의 문제가 제기되는 현실적 맥락을 제시한다. 저자의 강의를 따라가면서 독자는 구체적인 현실 문제로부터 현학적인 철학적 논의가 추상되는 과정을 생생하게 목격하게 된다. 저자는 철학사에서 제기된 정의론의 유형을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한다. 벤담에게서 유래하는 ‘공리주의’, 칸트에게서 유래하는 ‘자유주의’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로 거슬러 올라가는 ‘공동체주의’가 그것이다. 저자는 이 세 입장의 요체를 행복, 자유, 미덕이라는 낱말로 요약한다.

미덕, 행복, 자유

가장 오래된 것은 고대의 폴리스의 공동체주의적 관념이다. 그리스인들이 말하는 ‘미덕(아레테)’이란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많이 다른, 어떤 것이 그 목적(텔로스)에 맞게 존재하는 상태를 가리켰다. 가령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정치의 목적은 좋은 삶의 구현에 있다. 따라서 폴리스의 공직과 영광은 그 목적에 부합하는 사람, 즉 시민적 미덕이 탁월한 사람, 공동선을 가장 잘 파악하는 사람들에게 돌리는 게 정의라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사물에 고유한 목적이 깃들어 있다는 목적론적 사고는 근대 경험주의적 사고와 어울릴 수 없었다.

근대에는 정의를 세속적 방식으로 정의한다. 가령 벤담에 따르면 정의는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다. 쾌락을 늘리고 고통을 줄여 사회의 ‘행복’을 극대화하는 게 정의라는 생각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공리주의는 개인을 충분히 존중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개인을 희생시켜 전체의 행복을 증진시킬 수 있는 경우, 공리주의자들이 내릴 판단이 무엇인지는 분명하다. 나아가 통약 불가능한 가치들을 간단히 양화시키고 행복의 척도로 사용하는 도구주의적 발상에서는 섬뜩함마저 느껴진다. 벤담이 당시에 내놓은 공리주의적 제안들은 우리의 눈에 그의 ‘자기 성상’만큼이나 해괴해 보인다.

칸트는 이 노골적인 실용주의를 반박한다. 다수의 행복을 증진시킨다고 해서 그 행위가 저절로 정의로워지지는 않는다. 원시시대의 희생양 제의가 정의롭다고 할 수 있는가? 칸트에 따르면 정의는 결과에 대한 현실적 타산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결과보다 중요한 것이 동기이고, 정의는 모든 것―심지어 자연법칙―으로부터 ‘자유’로운 자율적 주체의 선의지에서 나와야 한다. 그래서 도덕은 정언명법, 즉 조건 없는 이성의 명령이어야 한다. 그 명령의 예로 칸트는 두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네 의지의 준칙이 항상 동시에 보편적 입법으로서 타당할 수 있도록 행동하라.” 그리고 “인간을 목적으로 대하라.”

롤스, 노직, 매킨타이어

과거에는 ‘공동체주의-공리주의-자유주의’가 정의론의 세 축을 이루었다면, 오늘날에는 대립구도에 약간의 변동이 생겼다. 먼저 공리주의를 정의의 원리로 주장하는 철학자는 오늘날 그리 많지 않다는 점을 지적해두자. 다른 한편, 정의에 관한 자유주의의 입장 역시 이미 오래전에 공평주의와 자유지상주의로 분화됐다. 사실 같은 ‘자유주의’로 묶여도 롤스의 공평주의와 노직의 자유지상주의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한다. 한마디로 오늘날의 담론에서는 자유주의, 자유지상주의, 공동체주의가 정의를 둘러싸고 각축을 벌이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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