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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Scrap

인형극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by actor_zoo 2008. 9. 15.
김용석의 대중문화로 철학하기 /

인형극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춘천국제인형극제가 올해로 스무 돌을 맞아 세계적인 인형극 축제로 우뚝 섰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로부터 꾸준히 사랑을 받고 있다는 뜻이다. 대체로 전통적인 공연 방식을 유지하는 인형극이 첨단 디지털 문화의 시대에도 폭넓은 관심의 대상이 되고 관객에게 감동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인형극의 기예적 특성 때문이다. 우리는 인형극을 볼 때, 우선 시각으로 무대에 있는 인형의 동작을 본다. 그러면서 또다른 것을 본다. 무엇을 본다는 말일까? 우리는 인형을 조작하는 ‘사람’을 본다. 이렇게 말하면, 무슨 소리냐고 할지 모르겠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인형극에서 인형 조작자는 의도적으로 보이지 않게 연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관객은 ‘의식의 눈’으로 그를 본다. 인형의 드러난 동작을 보면서 동시에 의도적으로 감춘 것을 ‘본다’. 이 이중적 관조가 바로 인형극의 특성이다. 또한 곧 알아보겠지만 바로 여기에 인형극이 지닌 철학적 매력이 있다.

예를 들어 보자. 오랜 전통을 지닌 막대인형극의 경우 한 개의 막대 끝을 머리로 하고 그 아랫부분을 쥐고 인형의 동작을 만들어낸다. 좀더 복잡한 줄조작 인형극의 경우, 관절을 가진 인형의 각 부위에 줄을 매고 위에서 늘어뜨려 인형을 조작한다. 이 모든 경우 조작자는 무대 바로 뒤에 있거나 무대 위 커튼에 가려져 있다. 관객은 인형의 ‘어눌한 동작’들을 보면서 웃고 울고 감동하며 ‘조작 예술’의 뛰어남을 즐긴다. 그러면서 동시에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지?!”라고 하며 지속적으로 인형 조작자를 의식한다. 즉 인형을 보면서 사람을 보는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인형의 동작을 보면서 사람의 능력을 감지한다.

손인형극일 경우를 보자. 인형 안에 손을 집어넣고 손가락과 손목을 움직여 인형을 조작하는데, 한손 인형이든 양손 인형이든 인형을 조작하는 사람의 손은 당연히 인형의 몸 안에 가려져 있다. 하지만 관객은 인형의 동작 뒤에 의도적으로 숨은 사람 손의 능력을 의식하며 극을 본다. 영상을 이용하여 기술적으로 조작성을 철저히 가리는 듯해 보이는 ‘검은 극장’ 인형극의 경우, 빛이 제어된 검은 배경에 조작자 역시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있어서 관객에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이 경우도 관객은 조작자의 존재를 의식하고, 그 ‘보이지 않음’을 즐기기까지 한다.

이렇게 감춤과 드러냄이 중첩되는 이중성은, 우리가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차원에서도 인형극을 여타 예술 형식들과 차별화한다. 그것은 ‘실감’의 차원이다. 우리는 연극 무대에서 배우를 본다. 사람이 직접 실감나게 연기하는 것을 본다. 영화 화면에서도 우리는 사람을 본다. 더구나 영화에서 연출자는 어떻게 하면 ‘실감 나게’ 촬영할까 하는 데에 모든 역량을 집중한다. 영화에서는 ‘실제 같은 효과’가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배경과 동작을 보여주는 영상에서뿐만 아니라 음악과 음향 그리고 대사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관객은 영화를 보며 “와! 실감 난다”라고 한다.




그런데 앞서 인형들의 동작을 ‘어눌하다’고 했다. 이는 인형극에 대한 폄하가 아니다. 인형극에서 실감 나는 연기는 배제되기 때문이다. 인형극은 조작자가 ‘실감 나게’ 하는 게 아니라, 어떤 의미에서는 실제적인 것보다 ‘모자라게’ 연출하며, 그 모자란 연출을 비밀인 것처럼 하지만 실제로는 노출하는 특이한 방식을 취한다. 이런 묘한 한계 때문에 인형극은 오히려 그 예술성을 발휘한다. 그 한계는 ‘자연스런 어색함’이라는 형용모순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인형극의 예술적 기만성은 사실 탁월한 솔직성이다.

또한 이때 어색함은 일종의 ‘동작의 여백’이다. 인형극은 이를 적극 활용한다. 그 여백에는 ‘사람’이 있다. 불완전하지만 탁월한 사람의 능력이 담겨 있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우리가 인형극에 감동하는 것은 그곳에 인형이라는 사람의 모습과 함께 실제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곧 관객이 사람을 느끼기 때문이다. 인형극 공연에는 휴머니즘이 물씬 묻어난다. 종종 예술은 예술가를 잊게 한다. 특히 실감 나게 하기 위해 모든 첨단 기술과 연출 역량을 쏟아 붙는 예술 형식에서 그렇다. 그러나 인형이 사람을 잊지 않게 하듯이, 인형 예술은 그 예술가를 오히려 은근하면서도 빼어나게 드러낸다.

휴머니즘이란 무엇인가? 수많은 정의가 있지만, 그 어느 것보다 타당한 것은 ‘사람에 대한 진지한 관심’이다. 모든 상황이 사람을 잊게 하더라도, 사람의 모습을 그리며 사람을 느끼는 것이 휴머니즘이다. 그리고 인간의 능력을 자유롭게, 그러면서도 오만하지 않게 발휘하는 것이 휴머니즘의 속성이다. 이런 면에서 인형극은 아이에게는 물론 동심을 되찾으려는 어른에게도 인간을 상기하게 하는 진솔한 예술의 고향 같은 것이다.

김용석 영산대 교수, anemos@ys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