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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C./Scrap

인터넷 ‘댓글’ 문화를 생각한다

by actor_zoo 2008. 9. 15.
김용석의 대중문화로 철학하기 /

인터넷 ‘댓글’ 문화를 생각한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표현하지 않고, 삶을 살 수 없다.” 철학자 에른스트 카시러의 말이다. 각 개인은 지속적인 자기표현으로 다른 사람들과 무엇인가 공동의 세계를 찾고자 하며, 표현의 다양한 방식들은 소통을 위한 나름의 문화적 영역을 구성한다.

그러나 또한 인간은 표현을 통제하는 방식을 발전시켜 오기도 했다. 이렇게 말하면 얼른 언론 탄압 같은 정치적 차원의 문제를 떠올릴지 모르지만, 표현 통제의 심층은 우리 일상에서 더 잘 찾아볼 수도 있다. 우리는 일상의 대화 가운데서도 상대방을 입 다물게 하거나 주눅 들게 하기 위해, “(너는) 말이 많아!” 같은 말을 하거나 듣지 않았던가. 우리 생활 전통에서 ‘과묵’함은 미덕이지만, 때론 말 많은 사람을 통제하거나 어떤 문제를 말하지 않고 그냥 ‘넘기기’ 위한 기제로 작동해 온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말에 대한 책임이라는 속뜻을 지닌 남아일언중천금(男兒一言重千金) 같은 한자 성어도, 때론 한자의 권위만큼이나 무거운 중압으로 설익은 표현들을 제어하는 역기능을 하지 않았던가. 언제부터인가 우리의 전통은 ‘말 많이 하는 문화’와는 거리가 멀었던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말의 문자적 표현인 글에 이른다고 상황이 달라지진 않는다. 우선 우리나라에서 한글로 글쓰기 교육이 어릴 적부터 제대로 이루어져 왔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찍부터 지금의 영어 배우기 열풍 정도로 한글 글쓰기를 배웠다면, 사정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지만 말이다. 나도 초등학교 때 일기 쓰기 숙제를 했었다. 하지만 일기가 숙제가 될 때 그 곤혹스러움이란 …. 또한 일기 쓰기는 매우 사적인 것이다. 언제 공적인 장에 올릴 글을 쓰기 위한 교육을 제대로 받아본 적이 있었던가?

인터넷이 등장하기 전까지 공적인 공간에 글을 올릴 수 있는 기회는 일부 제한적인 사람들에게 주어졌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든 다른 나라에서든 공통적인 것이다. 그러나 말과 글로 표현하는 데에 일상적 장애가 더 많았던 곳에서는, 쌓여 있던 표현의 의지는 더욱 강해질 수 있고 그것이 봇물이 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인터넷에서 누리꾼의 익명성을 문제 삼는다. 물론 문제가 있다. 하지만 인터넷의 도래는 그에게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지을 수 있는’ 기회를 준 것도 사실이다. 자신의 본이름과 달리 사이버 공간에서 사용하는 이름(아이디)은 대개 스스로 지은 것이다. 누리꾼이 아이디와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는 게 아니다. 그는 마치 작가의 필명처럼 사이버 이름을 통해 자신을 표현한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듯이 ‘마구’ 표현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표현 행위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기도 한다. 그 안에 ‘나는 표현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철학적 명제가 끼어들 틈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제 ‘마구’ 써서 올린 댓글을 ‘악플’이라는 신조어로 일반화해서 이른다. ‘악의 축’으로 규정한 것이다. 악플을 다는 사람은 손쉽게 악인이 된다. 이렇게 해서 악의 축을 구성하는 사람들과의 대화는 더욱 어려워진다. 많은 지성인들이, 마구 써서 올린 글을 비판한다. 이른바 ‘정제된 언어’로 글을 쓸 줄 아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이 ‘막 글’을 비판할 때 사용하는 언어 표현은 대충 이렇다. 선과 악의 손쉽고도 무서운 편가르기에 의한 ‘악플’, ‘악취가 진동하는 사이버 토론장’, ‘쓰레기 더미’, ‘배설물 세례’, ‘수질 관리 대상’ 등등 ….

넓게 보아 글쓰기와 글 올리기를 ‘문화적 놀이’라고 한다면, 나를 비롯한 기존 필자들은 돈(원고료)을 받고, 글의 권위가 기본적으로 인정되는(어떤 의미에서 사회·문화적 기득권 덕에 ‘글발이 서는’) 어드벤티지를 갖고 글쓰기 게임을 하고 있다. 반면 누리꾼에게는 이른바 익명성이 유일한 어드벤티지일지 모른다.

끔찍하게 표현된 댓글을 무작정 변호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렇게 물어보고 싶다. 이른바 악플에 대한 비판에는, 문화적으로 가진 자, 힘 있는 자, 대접받는 자의 무시와 폄하가 스며 있지 않는가? 마구 써서 올린 글은 문화적으로 힘없고 빈곤한 자의 절규라고 생각해볼 수는 없을까? 게시글이든 댓글이든 인터넷상에 ‘떠도는’(이 말의 의미는 중요하다. 그들도 고뇌하고 방황하기 때문에) 글들을 문화적 시각으로 볼 때, 이것이 ‘표현하고 싶음’과 ‘표현할 수 없음’의 갈등 그리고 ‘공인된’ 표현의 기회를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불평등을 깊게 내포하는 현상이라고 진지하게 성찰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인류 문명사에서 인터넷이 중요했던 것은, 그 자체가 소통의 ‘자율적 유기체’로 성장할 가능성에 대한 시험 무대였기 때문이다. 인터넷의 문제가 단순히 법적인 문제로 환원될 수 있는 게 아니라 철학의 문제, 교육의 문제, 문화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을 만큼 되려면 또 얼마나 많은 세월을 기다려야 하는가?

김용석 영산대 교수 anemos@ys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