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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옥이 말하는 몸/동양의 기철학

by actor_zoo 2011. 7. 20.
김용옥이 말하는 몸/동양의 기철학
1997년 10월 14일 18시27분

제목: 김용옥이 말하는 몸/동양의 기철학
[동아일보] 1997-10-14 (문화) 인터뷰 18면 판 4089자 스크랩


◎“육체정신 조화… 이젠 「몸」의 시대다”/21세기 최대과제는 근대 이성주의 극복/인간중심의 새비전 제시해야/우주의 모든 진리는 인간의 몸속에 있어/건강한 몸만이 사회건강 보장
나무바닥에 전면 거울로 된 벽, 약초 냄새가 감돌고 한약장이 있다는 것 말고는 한의원같은 구석이 없다. 9일 오전 7시45분, 서울 대학로 성좌소극장 3층 도올한의원에서 만난 김용옥(49). 그는 여전히 박박 민 머리에 검정두루마기 한복차림이었다.
늘 화두로 삼아온 기철학은 곧 몸철학이라고 주장할 만큼 일찍부터 몸에 많은 관심을 가져 오신것으로 알고있습니다.
『기철학은 기라는 개념으로 우주를 설명합니다. 우주 자체를 기가 끊임없이 모이고 흩어지는 프로세스로 봅니다. 기를 다섯가지 형태로 풀어낸 것이 오행이요, 기가 구체적으로 구현된 것이 인간의 몸이에요. 몸철학은 우주의 모든 진리가 인간의 몸에 구현돼 있으며 우주의 궁극적 실체가 몸이라고 믿거나 몸으로부터 도출돼야 한다고 믿는 철학적 신념이나 체계를 말합니다』
몸철학에서 말하는 몸이란 무엇입니까.
『동양철학은 몸을 기의 복합체라고 봅니다. 인간의 몸에는 수십억년에 이르는 우주진화의 모든 흔적이 담겨 있습니다. 서양철학은 인간의 몸을 육체와 정신으로 분리해 정신쪽에 훨씬 더 무게를 둬왔습니다. 그러나 나는 정신과 육체는 분리할 수 없는 몸의 서로 다른 양태라고 봅니다. 버트런드 러셀이 말하는 뉴트럴 모니즘(일원론)과 같은 맥락이지요. 인간을 호모 사피엔스라고 합니다만 이는 이성적인 존재란 뜻으로 정신쪽에 비중을 둔 개념입니다. 그래서 나는 인간을 우리말 몸(mom)에서 따온 호모 모미엔스라고 부릅니다』
대학교수에서 저술가로, 한의과대학생에서 다시 한의사로 직함이 여러 차례 바뀌었건만 그의 형형한 눈빛과 엄숙주의를 걷어치운 거침없는 표현은 여전했다. 다만 지명을 바라보는 나이나 생명을 다루는 의사로서의 책임감탓일까, 좌충우돌식의 독설이 순화되고 특유의 나르시시즘도 빛바랜 듯했다. 학문에의 열정뿐이던 그의 가슴도 조금은 넉넉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근래에 와서 몸에 대한 관심이 증폭된 배경은 무엇입니까.
『근세를 지배해온 이성주의는 장점도 많지만 절대화한 나머지 횡포도 많았습니다. 미셸 푸코도 사회의 아웃사이더들을 미친 놈으로 몰아붙여온 근대국가의 이성제일주의를 비판하지 않았습니까. 몸에 대한 관심은 이성주의에 대한 저항에서 출발합니다. 메를로 퐁티는 이세계와 우주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의식에 반영된 현상이라고 이해합니다. 바로 그 의식이 몸의 작용이기 때문에 몸에 우주의 모든 가능성이 담겨 있다고 보는 겁니다. 현대 의학의 발전도 여기에 가세했어요. 뇌연구는 신의 영역으로 간주돼온 인간의 의식과 사고작용이 대뇌피질의 신경세포인 뉴런의 연결 과정에서 일어나는 특수한 기능이라는 사실을 밝혀내는 수준까지 이르렀습니다. 정신활동도 알고보면 신경생리학적 화학변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지요』
그는 몸담론의 등장이 인간의 이성을 부정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출현과 관계가 있는데 동양철학은 일찍부터 인간의 몸을 진리의 출발점으로 삼았다며 서구의 몸담론을 역수입해 새로운 것인양 떠드는 풍토가 한심하다고 했다.
몸을 보는 동서양 인식의 차이는 어떤 것입니까.
『사실 서양에는 몸담론의 전통이 없습니다. 기독교적 이원론은 영혼을 불멸의 독립적인 실재로 간주한 반면 인간의 몸은 「영혼을 잠시 담아놓는 그릇」에 불과하다고 여겼어요. 서양철학의 몸에 대한 관심은 해부학적 형태론의 연장선에서 전개되고 있습니다. 해부학을 뜻하는 영어의 anatomy는 「자른다」는 라틴어에서 왔는데 이는 틀린 말이에요. 몸의 형태학(morphology)이 정확한 말이지요. 그러나 동양에서는 몸을 서양처럼 철저하게 물질화시키지 않아요. 서양은 인간의 정신을 뇌로 집중화시키지만 동양에서는 정신을 몸 전체로 분산시키지요. 그것이 바로 한의학의 핵심이기도 한 오장육부론입니다. 오장육부론이란 인체의 주요 기관이 나름대로의 생리와 성격을 갖고 있으며 이를 총괄연결하는 경락이란 체계를 통해 몸 전체를 통제하고 정신을 지배한다는 이론입니다. 내가 동양인으로 태어난 것을 행복하게 여기는 이유도 이겁니다』
이 대목에서 그의 학문적관심이 동양철학에서 한의학으로 옮겨지게 된 배경을 엿볼 수 있었다. 서양철학이 논리의 세계라면 동양철학이나 한의학은 직관, 통찰의 세계라며 언어가 정교하지 않아 신비주의에 흐르기 쉽다고 지적했다.
몸담론은 유심론보다는 유물론 쪽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요즘 몸담론의 추세는 인간의 사고작용이나 의식마저도 물질적 토대로 밝혀내자는 물질환원론과 몸은 정신과 육체가 어우러진 단순한 물질 이상의 실체라는 두 가지 시각이 있습니다. 둘다 유물론에 가깝지요. 삶의 근본을 수신으로 보는 유가의 현실주의 철학도 유물론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신은 영어의 마인드와 대비되는 물질적 육체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신을 이해하는 방식이 기이기 때문이지요』
그렇다면 몸의 소멸과 함께 영혼도 소멸한다는 입장인데 불교의 윤회설과는 양립하기가 어렵겠군요.
『좋은 지적이에요. 윤회설은 불교와 동양사상이 갈라지는 분기점이라고 할 수 있어요. 동양사상은 인간이 사망하면 육체와 더불어 존재했던 영혼이 우주로 흩어지게 된다고 보지요. 다만 죽음과 동시에 영혼도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1백여년에 걸쳐 천천히 흩어진다고 보고 있어요. 그러나 윤회설은 인간의 영혼을 절대적으로 보고 한 생을 살 때마다 몸이라는 다른 껍질을 쓰고 세상에 나온다고 보고 있지요. 영혼의 절대성과 지속성을 믿는다는 차원에서 불교는 동양사상보다는 오히려 기독교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불교도 궁극적으로는 윤회의 굴레를 벗어나 무로 가는 해탈을 추구하기에 기철학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몸에 대한 관심은 자칫 쾌락만을 좇는 향락주의에 빠지기 쉬운 것처럼 비쳐지기도 합니다.
『인도의 사원들은 온통 적나라한 남녀의 성교장면을 담은 미투나상으로 덮여 있어요. 카마(Kama·육욕)에 대한 추구는 성욕의 노예가 되자는 게 아니라 이를 통해 해탈하자는 겁니다. 쾌락주의로 알려진 에피쿠로스학파나 금욕을 주장하던 스토아학파가 추구하던 궁극적인 목적은 한 가지, 마음의 평정아닙니까. 현대의 에로티시즘을 획일화 돼가는 인간성에 대한 저항이라고 볼 수는 있지만 쾌락으로 인해인간 존재가 소외돼서는 안됩니다』
일부에서는 몸에 대한 관심이 젊음지상주의로 몰고간다는 우려도 하고 있습니다.
『동양 몸담론의 핵심은 이소룡이 잘 하는 쿵푸와 같은 말인 공부입니다. 학문이든 기술이든 뭔가를 배우고 익혀 숙달된 상태에 이르도록 한다는 거지요. 따라서 동양 몸담론의 시각에서는 쿵푸를 잘하든 무를 잘 썰든 단련된 몸이 아름다운 겁니다. 여기서 우리의 교육을 반성해 볼 필요가 있어요. 우리는 오로지 두뇌를 발달시키는 게 교육의 목적이니까요. 장인정신을 심어준달까, 몸의 단련을 통해 육체와 정신을 조화시키는 교육이 21세기의 새로운 교육철학이 돼야 합니다. 몸의 활동을 증대시키고 몸을 단련하는 사회적 장치를 확대해 나감으로써 개인의 건강, 나아가 몸의 집합체인 사회의 건강을 추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지난해 9월 개업했으니 1년이 지났군요. 몸철학을 실제 임상을 통해 검증, 확인하면서 느낀 소감은….
『나는 환자에게 몸속에 약이 다 들어 있다고 말합니다. 평소 생활에 질병을 유발하는 원인이 있는지반성하고 고칠 의지가 있다면 내가 도와주겠다고 하지요. 신경성 환자들이 많은데 한의학적으로 보면 스트레스는 기가 뭉쳐있는 겁니다. 개인이든 사회든 한 곳에 뭉쳐 있는 기를 잘 풀어야 건강해져요. 면역력이 떨어지면 질병에 걸리듯 질병은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자체의 문제입니다. 그래서 나는 한의학을 매크로 바이올러지(거시생물학)라고 이름붙였어요』
그는 21세기 문명의 최대 과제가 근세를 지배한 이성주의의 극복이라며 동양철학과 한의학을 서양의 과학적 언어로 체계화하면 인류가 이성의 횡포에서 벗어나 자신을 파악할 수 있는 새로운 비전을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김세원 기자〉
□김용옥 약력
△72년 고려대 철학과 졸업
△74년 대만재 대학원 석사
△77년 일본 동경대 대학원 종교철학과 석사
△82년 미국 하버드대 철학박사
△82∼86년 고려대 철학과 교수
△96년 원광대 한의대 졸업
△96년 도올한의원 개업(현)
△96년 서울대천연물과학연구소 객원교수(현)

 

출처 : http://bomber0.byus.net/dohol/archives/00066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