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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역사

히틀러 최후의 14일(Der Untergang) - 요하임 페스트 / 교양인

by actor_zoo 2013. 5. 25.



무엇보다 히틀러의 독일 멸망을 이처럼 간략하고 비유적으로 쓴 작품은 드물다. 

역사의 범주에 있으나 소설과 같은 긴장이 역사학자인 작가의 붓끝에서 잘 이루어진 작품이다.


찬란한 과거를 뒤로하고 몰락해가는 국가와 개인적 죽음. 그것을 차마 뿌리칠려하지만 거역할 수 없는 시간들.

반항과 복종, 배신과 충성 그리고 인간적 공포와 집단적 계급과 지위에서 나오는 집단적 철학.


결국 몰락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애써 있지도 않는 머리속 상상의 명령과 자연의 힘에 의지하는 지푸라기 부여잡기식으로 위안하고

의연한 이면에 추한 인간이 가지는 보편당연한 공포의 모습들은 글을 읽는 내내 심장을 크게 울리게 한다.


그는 이미 자신이 게임에서 졌다는 것, 이제는 그것을 감출 힘조차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신체적으로 매우 두려운 모습을 보였다. 힘들어 무겁게 상체를 앞으로 내밀고 두 다리를 질질 끌면서 거실에 회의실로 몸을 옮겼다. 그는 균형 감각이 없어졌다. 그 짧은 거리 도중에(20~30미터) 멈출 때면 이런 경우에 대비해 벽 양쪽에 마련해 둔 벤치에 앉거나 아니면 대화 상대자를 꼭 붙잡았다.... 눈은 벌겋게 충혈되었다. 모든 문서가 그를 위해 글자를 3배로 확대하는 '총통 타자기'로 작성되어 있었지만 그래도 도수 높은 안경 없이는 글을 읽지 못했다. 입 가장자리로는 자주 침이 흘러내렸다.


"(밤샘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면) 그는 완전히 마비된 모습으로 널브러진 채 오로지 초콜릿과 케이크....생각만으로 가득 찼다. 케이크에 대한 욕심은 거의 병적이었다. 전에는 고작해야 세 조각을 먹더니 지금은 접시 가득 세 번이나 먹었다."

또 다른 여비서는 그의 말의 내용이 단조롭다고 불평하였다.

"그 어떤 주제에 대해서든지 열광적으로 말을 하곤 하던 사람이 마지막 몇 주 동안에는 개와 개 훈련과 개 먹이에 대해서, 그리고 세상의 어리석음과 사악함에 대해서만 이야기했다."


"벌써 지난 며칠 동안 침묵이 벙커를 지배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여기저기 혼자 앉아서 혹은 작은 그룹을 이루어서 기다렸다. 하지만 벌써 오랫동안이나 기벽스러운 발상들로 연출되어 온 이 삶이 날카로운 대립 효과 없이 끝날 수는 없다는 듯이 이 순간 앞 벙커에 있는 식당에서 춤판이 벌어졌다. 몇 주 동안이나 벙커에서 지낸 사람들이 긴장을 풀기 위해 벌인 춤판이었다. 마지막에 분명히 느슨해지긴 했지만 너무나도 강력한 안도와 종말의 느낌 속에서 와르르 무너졌다. 스피커에서 자유분방 음악이 흘러나와 아무리 먼 곳이라도 지하 미로의 구석구석까지 음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총동 벙커에서 심부름꾼 한 사람이 나갔다. 그는 총통께서 죽으려고 하니 조용히 하라고 전했다. 하지만 대부분 술에 취해 식당에 모인 사람들은 그런 요구는 들은 체 만 체 주연을 계속하였다."


무엇보다 히틀러의 정치철학과 그를 역사적으로 바라본 존재의 의의는 참으로 볼만한 대목이다.

이전의 어느 독재자들에서 볼 수 없고 앞으로도 후무할 그의 정치철학은 강자의 권리와 파괴 그리고 몰락의 의지로 귀결된다.

과거의 침략의 주체들은 피침략자들의 입장에서 그들의 침략행위를 돌아보게하는 일말의 관점이 있었다고 한다면 

히틀러는 그러한 관점조차 존재하지 않는다. 

한마디로 그는 파괴이후 다시금 또다른 파괴를 모색한다. 결국 그의 자살도 그러한 자기파괴로 나아간다.

작가는 마지막 벙커에서의 패배와 죽음의 공포 그리고 몰락, 이 과정에 놓인 히틀러는 가장 히틀러적인 모습이라고 강변한다.


실제 히틀러는 이전에도 없었던 역사적 인물로 존재하는 자신을 거듭 공표했었다.



*이 책을 토대로 2004년 <몰락(Der untergang)>이라는 영화가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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