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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기타외국소설

그리스인 조르바 - 니코스 카잔차키스 / 열린책들

by actor_zoo 2013. 6. 15.



<그리스인 조르바> 이 책을 읽는데 정확히 2주가 걸렸다.

읽기 힘들거나 맘에 들지 않거나 공감과 감정이입이 되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 반대, 2주 동안 크레타를 다녀왔으며, 신나게 라키와 럼을 마셨으며, 광산에서 광맥을 찾았으며, 여자를 사랑했고, 끔찍한 살인도 목격했으며, 내 존재의 심연에 영혼을 만났으며, 하나님과 악마를 보았고, 갈매기와 바다와 나를 동일시하였고, 그리고 알렉시스 조르바를 친구로 사귀게 되었다.

그러한데 어찌, 이 책을 빨리 볼 수 있단 말인가. 도저히 하릴없다.

뒤에 알게 되었지만 카잔차키스도 조르바를 회상하며 2주만에 책을 완성하였다 한다.

카잔차키스의 위대함은 독자를 붙들어 메는데 있다.

여느 독자건 그들의 심연을 생각케하는 마법을 부린다.

서양의 기독교에서부터 동양의 붓다까지 그에겐 모든 것이 인간으로 관통하고 나아가 조르바라는 인간과 신의 사생아를 잉태한다.

조르바를 통해 인간의 이성을 꾸짖고, 예술의 위대함을 칭송하며, 전쟁의 부당함과 진정한 자유와 사랑, 고통과 정열을, 미래의 불안을 오늘로 승화하고 과거를 찬송하며, 행함으로 이루어지는 지혜는 탁상의 이성을 조롱하며, 사나이들의 화해와 화법 그리고 저항과 시(時)를 노래한다.

사람은 꿈꾸는 나무 혹은 나무라는 꿈이 있다.

그런데 우린 그 나무가, 꿈이 못내 안스럽고 불안하며 주체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우리 존재의 불안일 것이다.

그건 바로 우리의 토양의 부재 이다.

나무가, 꿈이 설 토양.

카잔차키스는 그 토양을 우리에게 생각하라한다. 조르바를 통해.

인간은 신을 통해 그리고 인간 스스로를 통해 구원 받을 토양을 가지고 있다.

아니면 그냥 불안한 공중부양(?)의 상태인 것이지. 뭐.

<그리스인 조르바>는 곱씹으면 몽환의 자서전이 된다.

부러우면 진다고? 어찌 부럽지 않을 수 있는가?

번역, 고 이윤기 선생의 특유의 단어의 선택에 찬사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