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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인문교양철학

김광석과 철학하기 - 김광식 / 김영사

by actor_zoo 2016. 1. 31.



철학도 없고, 김광석도 없다.


90년대 초반, 대학에 들어갈 때 대부분의 플레쉬맨들은 서점을 들려 "서양철학"이라는 개론 서적을 구입했다. 아니면 여느 집마다 대학생이 있다면 그집 책장엔 여지없이 그 책이 꽂혀 있었다. 그런데 사실 그 책을 보는 이는 많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시기에 헌책방에서 많이 보였던 책 또한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당시에는 대학이라하면 상아탑이라는 이름을 내세우며 거기에 걸맞게 철학 정도는 알아야 한다고 보았다. 아니 몰라도 좋으니 관련된 책은 가방이나 옆구리에 끼어줘야 소위 큰 공부를 하는 대학생이라는 밑그림이 그려졌더랬다. 하지만 오늘날은 어떤가. 대학은 더이상 시세를 떠난 상아탑이 무너진지 오래다. 어느 학교는 철학과가 폐과되었고, 이젠 극장이나 쇼핑몰, 도서관보다 커피숍이 학생들의 책 보는 장소가 되었다. 이젠 철학은 학생들에게 별소용이 아니, 의미가 없다. 말그대로 "철학이 밥 먹여주냐?"라던 옛 농이 씨가 되어 현실이 되어버렸다. 뿐만 아니라, 대학들은 경쟁하듯이 사람들이 움집하는 장소에다 취업률을 내세우며 입학광고에 혈안이다. 대학은 이제 취업사관학교가 되어버렸다. 거기엔 더이상 철학은 없다.


대학을 들어갈 때 즈음, 예전의 입시생들은 캠퍼스의 낭만이라는 것을 상상하곤 했다. 잔디밭, 이성과의 만남 그리고 통기타의 자유로운 노래. 그러다 당시(여전히 90년대 초반) 호텔 지하에서나 있던 카라오케가 한국화되어 노래방으로 이름을 바꾸고 대학가로 들어왔다. 더이상 학생들은 기타를 치지 않았으며 이내 후배들 중에는 기타를 칠 줄 아는 이가 드물어졌다. 그리고 그 즈음에 김광석도 우리를 떠났다. 이젠 우리에겐 더이상 김광석은 없다.



없는 것 + 없는 것 = 있는 것


『김광석과 철학하기』, 이 책은 이렇게 우리 사회에서  없는 것을 엮어 다시금 있어야 하는 것으로 우리에게 선 보인다. 책은 12명의 철학자(고대에서 현대까지)를 개괄적으로 설명하고 있으니 앞서 언급한 "서양철학"과 같은 개론 서적에 가깝다. 하지만 과거, 대학생들의 정체성을 드러내거나 철학의 무게를 더하여 지식인이라는 차별성을 보이려는 과시욕도 없다. 곧 책은 오늘날 철학을 멀리하는 이들의 현실에 맞추어 친절하고 쉬운 철학의 다양한 견해들을 보이고 있다. 책은 각기 철학의 사조(12명의 철학자들의)를 깊이 있게 다루지 않는다. 다만 우리네 삶이 물질로 이루어져 그것에 메여 있는 것 같지만 철학적 사상도 큰 영향을 받음을 알리고 있다. 독특한 점은 책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김광석이라는 요절 가수의 노랫말을 통해 죽어가는 철학을 살리고 있다는 것이다. 죽어가는 철학을 죽은자의 노랫말에서 드러내는 것이 참으로 재미있다. 




김광석과 점 하나 다른 저자 김광식은 김광석의 노랫말에서 김광식의 철학 명제를 뽑아낸다. 그리고 그 명제와 부합하는 철학자를 찾아 독자에게 알린다. 예를들어,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에서 김광식은 '창의 철학'을 내세워 '코기토 에르고 숨'의 데카르트의 방법적 의심론을 펼친는 식으로 말이다. 저자는 또한 각 철학별로 김광석의 노랫말을 실어, 노래로만 흥얼거렸던 노랫말을 눈으로 다시금 읽어 살피게 하여 해당부분을 다 읽고 나면 처음과 달라진 노랫말을 보게 한다. 달라진 노랫말은 김광석이 아닌 김광식의 노랫말이 된다. 그리고 책을 통해 독자의 생각이 더해지면 그 노랫말은 독자들의 노랫말이 될 것이다. 

딱딱한 철학이 김광석의 음율을 따라 부드러워진다. 쉽게 귀로, 아니 눈으로 들어온다. 여유가 있으면 책을 읽다 도중에 덮고 해당하는 김광석의 노래를 실제 들어본다. 그러면 과거의 노래에서 과거의 소산인 철학들이 현재에 생존함을 알게된다. 

저자는 또한 매우 친절한 설명으로 독자를 이끈다. 각 부분마다 철학자의 저서 본문을 인용하여 부연한다. 이는 이 책을 통해 알게된 철학의 개론에서 한층 깊이를 더하고 싶은 독자에게 좋은 안내가 될 것이다. 


김광석의 노래가 김광식의 노래로 책이 되었고,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겐 다시 독자의 노래로 남을 수 있는 좋은 책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