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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한국소설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박완서 / 웅진닷컴

by actor_zoo 2013. 2. 9.



새날이 밝았다. 오빠가 오래간만에 잘 잤노라고 기지개를 폈다. 나는 앞으로 후퇴한 정부가 수복됐을 때 생각만 하고, 당장 당면한 또 바뀐 세상엔 어떻게 대처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선 대책 없는 식구들이 답답하고 짐스러웠다....(중략).......

지대가 좁아 동네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혁명가들을 해방시키고 숙부를 사형시킨 형무소도 곧장 바라다보였다. 천지에 인기척이라곤 없었다. 마치 차고 푸른 비수가 등골을 살짝 긋는 것처럼 소름이 쫙 끼쳤다. 그건 천지에 사람 없음에 대한 공포감이었고 세상에 나서 처음 느껴 보는 전혀 새로운 느낌이었다. 독립문까지 빤히 보이는 한길에도 골목길에도 집집마다에도 아무도 없었다. 

_본문 中.


언젠가 어머니에게(그녀는 1943년생으로 초등학교1년때 한국전쟁을 겪었다) 한국전쟁 당시 이데올로기에 의한 학살 얘기를 들은 기억이 있다. 

"우리 마을은 국방군이 다 죽였어. 전쟁이 일어나고 우리 마을은 인민군이 들어와서 인민군 판이어서 마을에 국방군을 아들로 둔 두 집이 마을 사람들에 의해 먼저 몰살 당하고 말았지. 그 뒤로 인민군이 밀려 북으로 올라 가고 국방군이 들어 오게 되었지. 근데 군방군을 아들로 둔 두 집중에 한 집이 어떤 영문인지는 몰라도 살아 있었던 거야. 그뒤로 그 집안 식구들에 의해 마을 사람들이 죽어나가기 시작했지."

어머니는 아직도 전쟁 영화를 차마 보시지 못한다. 


저자의 성장소설은 두번의 역사적 격변과 여러번의 개인적 변화로 가득 차 있다. 전자는 일제 강점기에서의 해방과 한국전쟁이고, 후자는 서울로의 이사와 진학 그리고 그에 따른 새로운 만남들, 가족 친지의 죽음과 이데올로기에 따른 소망과 피박 등이다.

소설은 과거의 얘기들로 가득하다. 오늘날의 풍요와 디지털의 기계화 그리고 편리함에 비해 소설은 너무나도 가혹하고 삶의 여유가 없다. 하지만 오늘날과 다르게 사람으로 가득하다. 가난하지만 소망의 연속이며 치열하지만 희망의 열정이 있고 춥지만 가족과 친구가 있다. 


2012년 12월 18대 대통령 선거가 있었다. 

정권을 유지할려는 보수와 교체할려는 진보(내가 보기엔 보수이지만)의 대결이 유지의 보수의 승리로 아니, 정확히 구시대의 경제 우선의 논리에 의한 역사와 도덕의식을 버금으로 보는 세력이 다시 승리하였다.

누가 되어도 똑같다는 말들도 있지만 우린 이미 도덕이 없는 경제살리기는 허구라는 것을 체험했는데도 여전히 제자리에 머물어 버리는 결과를 보고 말았다. 혹자는 노인들의 승리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이 소설은 그 노인들의 과거를 결코 대변하지는 않지만 이해하고자하는 마음을 가진다면 그것을 엿볼수 있는 있게 해준다. 

각설하고 위의 이 소설의 마지막 부분처럼 선거가 끝나고 남몰래 집밖을 나가 보았지만 세상은 그냥 조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