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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한국소설

모란꽃이 모랑모랑 피어서 - 박소정/ 다산책방

by actor_zoo 2014. 12. 13.


석화(石花)에서 빼낸 굴과 막걸리의 향을 먹으며 소설의 서평을 씁니다.



마치 병풍처럼 소설의 얘기가 한 폭의 그림과 그림으로 연결된 듯하다. 하나의 장면은 다른 장면과 잇대어 있는 듯하지만 사실 홀로 서 있기도 해보인다. 이는 각 장면이 각기 다른 향으로 가득찬 모양새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책은 첫장부터 끝장까지 향기로 가득하다. 설렘과 절망, 각오와 좌절, 사랑과 이별, 친밀과 낯섬… 


소설은 병자호란을 기점으로 조향사를 꿈꾸는 미래가 없는 천한 고아 소녀의 소박하고 척박한 삶으로부터 시작된다. 오래지 않아 여느 소설의 주인공처럼 짧은 희망 뒤에 긴 절망을 겪게되는 여인은 식구였던 동생과 정인을 떠나 궁으로 들어가고 거기서 호란을 겪어 중국 심양으로 볼모되어 간다. 

여인, 수연은 여기서 세자빈 아래 청과 무역하는 일 가운데 각종 향을 제조하며 다시 운명처럼 꿈을 실현해간다. 

향기로 가득한 이 소설에 사랑이 빠질리 있겠는가. 조선에서 궁으로 들어가기 전 절망의 나락에서 운명처럼 옷깃을 스쳤던 봉림대군과의 은은한 향기같은 사랑은 가까이에선 자극적이지만 거리를 두면 진하게 퍼지는 향처럼 서로를 취하게한다. 


소설의 구성은 조밀하지 않다. 작가는 구체적으로 말로 옮길 수 없는 향처럼 소설 속 얘기들의 인과를 느슨하게 배열한다. 자칫 조밀한 얘기꺼리를 바랐다면 인물을 설명하기 위한 상황전개로 다소 부자연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그렇다. 어찌보면 이 소설은 두꺼워야했는지도 모른다. 사랑이 움트는 대군, 정연이 아주 오래전 꽃신을 주워줬던 이었다는 것을 심양에서 우연한 기시감으로 알게되는 수연을 위해서라도, 팔 년의 이국생활을 끝내고 조역돌 발궈진 계절에 우연히 오래전 식구 은이와의 만남을 위해 소설은 억척스럽게 길어야 했었다. 아니, 기구한 삶을 못내 위로하기 위해서라도 향기처럼 짧아 책은 얇은 것이 맞나보다. 


소설의 중반에 와서 수연은 사람을 향으로 표현하기 시작한다. 마치 사람은 눈으로 보는 겉이 아니라 코로 맡는 내재된 영(靈)인 양. 

그리고나서 소설은 단순하지 않은 향 같은 사람을 드러낸다. 향은 단순하지 않다. 복잡하게 얽혀있되 그것이 향을 더 매혹적으로 만든다. 인생은? 

소설은 끝으로 치달으면서 복잡한 향만큼 오해와 암투와 반전을 보인다. 그것도 향기를 닮았다. 

이 소설 <모란꽃이 모랑모랑 피어서>는 향기에 절어 쪽마다 장면의 향으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