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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영미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 줄리언 반스 / 다산책방

by actor_zoo 2014. 8. 22.



이 책은 한 권의 시간이다.


시간이란.... 처음에는 멍석을 깔아줬다가 다음 순간 우리의 무릎을 꺾는다. 자신이 성숙했다고 생각했을 때 우리는 그저 무탈했을 뿐이었다. 자신이 책임감 있다고 느꼈을 때 우리는 다만 비겁했을 뿐이었다. 

우리가 현실주의라 칭한 것은 결국 삶에 맞서기보다는 회피하는 법에 지나지 않았다. 

시간이란.... 우리에게 넉넉한 시간이 주어지면, 결국 최대한의 든든한 지원을 받았던 우리의 결정은 갈피를 못 잡게 되고, 확실했던 것들은 종잡을 수 없어지고 만다.


오랜 시간 노출된 노인을 만난다.

선입견을 던져라. 그 노인을 여타 소설의 주인공으로 보고 조우하지마라.

노인은 세월에 의해 인생을 관조할 정도의 처지는 분명 아니다. 아직도 인생이 축적의 원리인지, 수리적 함수인지, 그리고 인성이란 지성같이 고착되는 것은 아닌지, 벗어진 머리숯에 반비례하게 인생에 넉넉해지는 것을 바라는 그저 평범한 노인이다.

그런데 이 평범한 노인은 스스로에게 낭패를 겪게하고 있다. 

자, 수정하자면, 어떤 낭패에 직면한 평범한 노인이 있다. 그리고 그 노인은 소설의 시작에서부터 진실을 알게 되는 순간까지 끊임없이 시간과 그 시간 선상의 개인의 역사를 쥐어 짜는데 여념이 없으며 개인의 역사는 개인의 그럴싸한 처세의 문학임을 알아간다.

문학은 매우 특별한 소재를 가진다. 그것이 이미 독특한 재료이든 평범함에서 가공된 독특함이건 그 자체로 특별하다. 그렇지 않으면 문학이 아니다. 이 책은 후자에 가깝다. 아니, 이 책은 전자에도 해당된다. 모든 인간의 역사는 자기만의 문학이니까.



기억의 허상.


내 얘기의 요지는, 장담컨대, 회한의 주된 특징은 할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는 데 있다. 이미 까마득한 시간이 흐른 마당에 사과를 하거나 보상해봤자 부질없는 짓이다. 하지만 내가 틀린 거라면? 시간을 거꾸로 돌려서 회한을 단순한 죄책감의 문제로 바꾸어, 사과를 하고 용서받을 방도가 있다면? 베로니카가 생각한 것처럼 내가 나쁜 놈이 아니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녀가 기거이 그를 믿어준다면?

어쩌면 나의 동인은 전혀 반대 방향에서 출발했고, 사실은 과거가 아니라 미래에 관한 문제인지도 모른다. 


정서적 기억은 소급되어 인간의 불수근과 자율신경계를 자극하고 이것이 신경과 근육을 움직여 표면화되면 그것을 우리는 소위 '진실'된 행동이라고 말한다. 이것이 저 유명한 메소드 연기의 창시인 스타니슬랍스끼의 연기술의 핵심이다. 

행자의 동인이 행자의 입장에서 진실하기에 그 행동은 리얼하며 이내 이것은 사실처럼 보인다는 것을 뛰어넘어 실제 '진실'이라는 당파를 쪼개는 객기도 옆보인다. 너무 자기도취의 메소드가 아닌가. 기억자체가 거짓인데 진실을 현상이라는 것에 매몰되고 천착하여 그것이 전부인양 코끼리 다리를 아직도 부여잡고 있다.

다시 소설에 초점을 마추어 보자면, 기억처럼 불명징한 것도 없다. 이 소설을 평한 이들은 말미의 반전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사실 이 소설의 매력은 흔하게 알고 있는, 60대 노인이 지나간 세월의 회한을 곱씹고 생의 반성으로 인해 불현듯 철학적 종교적 득도를 깨치고 고요히 생을 마무리하는 것이 아니라. 지나간 회한을 어떻게 하면 다시 회복할 수 있지는 않을까, 회복의 방향은 분명 내게 이로운 쪽으로라는 기억의 진상을 다시금 자기에게 유리하게 재편집하려는 욕구를 보이는 데 있으며, 마침내 돌이킬 수 없는 자기의 기억과 새털 같이 많은 기억의 파편들이 미래의 현상과 연결고리가 되어 자신의 책임이상의 것으로 돌아와서 자기 뒤를 후린다는, 실로 공포에, 이기와 자기당착, 그리고 '혼자'라는 자기와의 대면에 있다. 



시간을 돌리고 싶은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남의 기억을 다시금 돌려보는 것 밖에. 그럼 이 책을, 시간이라는 이 책을, 다시 보라.


자, 매력을 느꼈다면 우린 다시금 처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 그리고 다시 처음부터 시간이라는 이 소설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다시 본다 한들, 이건 이미 잉크가 종이라는 조직에 박혀버린 그래서 더이상 수정불가한 시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뻔히 아는 얘기를 다시금 보게 될 것이다. 그것이 시간이 아닐까? 

이 소설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그것은 시간이다.  다시금 볼 수 있는 그러나 변하지 않는, 변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질지언정 변하지 않는 우리네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