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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영미소설

소년은 눈물 위를 달린다 - 팀 보울러 / 놀

by actor_zoo 2014. 8. 27.



나는 다시 머릿속으로 시골의 들판을 그려 본다. 종종 그런다. 이 도시가 못 견디게 싫어질 때면 내가 손에 넣은 그 책에 실린 풍경 사진들을 떠올린다.



아이는 그냥 성장하지 않는다. 부모를 먹고, 부모가 사는 세상을 먹고, 친구를 먹고, 진짜로 성장이 필요하지만 멈추어버린 어른들을 먹고 자란다. 


성장소설은 말 그대로 성장의 여지가 있는 아이(여기선 고등학생)가 등장한다. 그 아이는 그냥 성장하지 않는다. 부모를 먹고 부모가 사는 세상을 먹고 친구를 먹고 진짜로 성장이 필요하지만 멈추어버린 어른들을 먹고 자란다. 

여느 성장소설이 어느 시대를 다루던간에 우린 소설을 뛰어넘는 시대의 민낯을 보게 된다. 그래서 성장소설은 내게 매력으로 다가온다. 말하자면, 아이가 주연이 되는 무대이지만 그 배경을 이루는 환경(어떤 성장소설은 정치사회 심지어 철학까지)은 생짜베기 다큐멘터리로 다가오는 중력감은 여타 소설보다 더 하다.


<소년은 눈물 위를 달린다>는 정말 달린다. 책을 펼치면 달리는 이유를 모른채 누군가에게 쫓기는 아이가 있다. 

아이는 한때 트랙을 달렸다. 아이는 사실 풀과 흙이 버무려진 공기를 뚫으며 달리고 싶어 하는지도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녀석은 이 도시가 못 견디게 싫다. 그런데 아이는 트랙이 아닌 도심을 뛴다. 쓰레기와 알코올, 개똥이 굴러다니는 아스팔트와 거기에 이어지는 콘크리트를 사정없이 내달린다. 

어두운 세력들에게 쫓기고 잡히고 그리고 그들에게 협박 받는 원인은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소년의 집구석과 관련이 있다.

아이의 엄마는 탐탁치 않은 정부를 만든지 얼마되지 않은 청소용역업체 청소부이고, 아빠는 직장에서 술때문에 해고당한 전직 택배기사다. 공히 이 두 부모는 아이에게 손지검을 한다. 아이는 익숙한 나름의 자기방어를 가지고 있어며, 시간차가 있지만 부모의 현주소를 모두 알게 된다. 아이는 부모의 미래를 신뢰하지 않고 자기의 정체성을 부모처럼 나몰라한다. 그렇다고 불량한 학생은 아니다. 오히려 스핑크라는 덩치에게 늘 구타 당하는 찌질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부모의 그 자식 아니겠는가. 부모가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을 지배하지 못하고 타성에 젖어 살면 아이도 그렇게 될 것이다라고 소설은 행간으로 주지하는 듯하다. 

하지만 부모에게서 희망을 보지 못하는 아이는 다른 곳에서 동경의 대상을 찾는다.

소년은 학교 도서관에서 책 한 권을 몇년전부터 훔쳐 간직하고 있다. 도심과 거리가 있는 자연과 동물의 사진이 담긴 책. 

소년이 좋아하는 이 책의 사진을, 집구석과 관련있는 듯하나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는 그래서 집이 정체모를 사람에게 발칵 뒤집이고 이내 그들에게 총에 맞은 소년의 엄마도 좋아한다. 

이들은 이미 도시와 처해진 상황에 찌들어 지쳐있다. 



영상같은 소설, 평범한 환경에 범죄라는 요소가 어설프게 낀 구성


사실 소설은 영상처럼 읽힌다. 그러나 평범한 환경에 범죄라는 요소를 가지고 들어와 가족과 섞어 놓은 구성이 눈에 차지 않는다.

중간중간 부모와 아이의 관계를 억지로 연결하고자하는 느낌도 든다. 그러다 소설의 후반으로 치닿고 소년의 뜀박질의 원인이 밝혀질 때쯤에 알게 된다. 아~ 그래서 그랬구나. 어린 아이가 목숨에 위협을 느끼면서까지 겁에 질렸을 때 보이는 부모에 대한 과거의 회상에서 왜 그놈의 책이 거론되었는지 그제야 알게 된다.


소설은 쉽게 읽혀진다. 차도와 인도 그리고 차와 건물 사이를 아이와 함께 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여느 성장소설처럼 아이의 내적인 문제나 독특한 환경, 시대적 배경을 기대하지 마라. 그냥 우연히 연결된 범죄집단과의 재수없는 사투가 한 가정의 발전적인 미래로 가는 발판이 됨을 보여주는 그럭저럭 재미있는 소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