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OOKS/영미소설

눈가리고 책읽는당 1기 - 단서: 진흙, 13살 그리고 실종 / 창비

by actor_zoo 2015. 11. 12.



창비에서 출판 전 가제본의 책이 왔다. '눈가리고 책읽는당'. 제목도 저자의 이름도 없다. 그냥 몇가지의 단서만으로 선입견 없이 오직 내용에 집중하는 독서. 좋은 기회를 누렸다. 


소설의 배경과 문체, 그리고 인물과 소재로 미뤄보건데 영미권의 작품임을 짐작할 수 있다. 배경은 유서깊은 공간에 지어진 사립학교, 중심 등장인물은 우리식으로 초등학교 6년에서 중학교 1년생, 세상에 온갖 갈등의 요소들이 조금씩 베일을 벗으며 자기 일인양 다가오는 예민한 시기의 아이들이다. 글의 무게는 가벼우며, 과거 사건의 기록을 관찰자의 시점으로 써가고 있다. 인물의 심리와 시각적인 묘사가 쉽게 독자를 사건의 현장으로 이끈다. 중간중간 시간을 뛰어넘어 삽입되는 사건 이후의 청문회는 소설의 결과에 궁금증을 유발하기도 하며 마치 헐리우드식 어린이 어드벤쳐 영화를 연상하게도 한다. 


내용은 사실 단순하다. 전개도 독특하거나, 혹 있어줬으면 하는 반전도 없다. 등장인물은 작가가 이 소설을 쓰기위해 가져온 동기에 비하면 환경도 정치도 국가라는 공동체도 사상적 견해도 전혀 없다. 아니 그 흔한(흔해져버린 그래서 가슴아픈) 충격적 가정폭력이나 태생적 장애 요소도 없다. 그렇다, 소설의 인물에는 어떤 재미도 없다. 그냥 아이들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지구의 환경을 개선하려는 프로젝트의 오류가 슬그머니 들어온다. 이제부터 아이들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는 상황에서도 양심이 살아나 친구를 위해 고개를 돌릴 수 없는 팔과 다리를 소유한 아이들 말이다. 홉슨의 선택(선택의 요소가 다 나쁠 때의 선택)에서 사람으로의 사랑을 택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등장인물의 초목표가 된다. 그런데 왜 아이들의 모험으로 소설을 내달렸을까? 사실 이 소설의 주요인물이 성인이었다면 소설은 보다 복잡한 전개로 이루어져야 했을 것이고 아마도 그것이 잘 되었다면 더욱 짙고 무거운 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왜냐면 소설의 소재는 지구의 멸망까지도 일으킬 수 있는 사건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우드리지 사립학교는 19세기에 건축된 개인의 사유지였다. 과거의 유산 위에 현재의 아이들이 미래를 바라보는 공부를 한다.  왠지 아이들이 학교 안에 고립된 듯한 느낌이 드는 것도 아마 배경이 되는 학교 때문일 것이다. 그런 곳에선 의례 사건이 일어날 것 같지 않은가. 그리고 여지 없이 사건은 일어난다. 소설은 그래서 독자에게 쉽게 다가와 내용을 매력적으로 보이고 어느새 마지막 페이지를 덮게 한다. 


소설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인물의 성격이다. 인물은 학생이라는 어린이들의 보편적 군상처럼 다가온다. 그리고 늘 어른들의 피해자가 되며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된다. 그러한 소설의 전개에 등장인물인 아이들이 동원된 듯한 느낌이 드는 건 과도한 해석일까? 그리고 이 소설은 큰 사건을 일으키고 해결하기에 급하다. 아이 셋이 실종된 것에 소설은 조금 성급하게 모든 인물이 사건의 규모를 아는양 전개된다. 소설은 성격과 글 아래 흐르는 선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이 소설 속 사건과 환경은 인물의 색깔에 영향을 주지만 성격적 존재는 약하고 결말로 급하게 치닫는 전개는 쉽게 읽혀 좋긴하나 독자로 큰 공감과 울림을 주기엔 흐름의 깊이가 얕다. 


소설을 한동안 멀리했거나 자기계발서나 인문과학에 치우친 독자라면 가볍운 내용과 빠른 전개에 머리를 식힐 수 있을 것이다. 영화처럼 옆에 팝콘을 두고 볼 수 있는 나쁘지 않은 소설이라고 총평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