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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과학건강

프루프 술의 과학 - 아담 로저스(강석기) / MiD

by actor_zoo 2016. 1. 5.





1. 주당(酒黨)의 탄생


술을 처음 입에 댄 것은 중학교를 다닐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직접 담은 술들이 많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왜 우리네 어머니들은 술을 그리도 경쟁적으로 담으셨는지) 호기심으로 먹었던 술은 혹독한 뒷 끝을 남겼다. 처음 먹었던 술은 온전한 간기능 때문인지 술통 반 정도를 먹어치운 다음에야 반응이 왔다. 방안의 천정이 춤을 추었고 벽이 일렁거렸다. 기분이 좋았다기보다는 내 의지에 반하는 몸뚱이가 되려 어색해서 당시에는 이걸 왜 먹는 건지 이해되지 않았더랬다. 그리고 한참의 세월이 흐른 뒤. 다시 댄 술은 과거 단 한 번의 기억을 불러 일으켰고, 먹고나서 후회하고, 또 먹고나면 다신 안 먹으리라 다짐하는 것이 다반사인 경험 위에 또 경험을 더하여 오늘날 술 없는 세상은 상상치 못하는 주당이 되어 버렸다. 이제 주당은 술이 몸에 안 좋다는 것을 막연히 알면서도 의지를 불 태우지 않으면 다시금 쉽게 술에 입을 대는 자신을 본다. 그러다 적당한 술은 되려 몸에 좋다는 신문이나 잡지 지면 귀퉁이의 글을 우연히 보고 어느 것보다 크게 확대 해석하여 술에게 무릎을 꿇고 있는 현실의 자신을 애써 위로한다. 그리고 또 찾아오는 숙취를 증오하면서 숙취를 해소하려는 온갖 민간요법을 시도하기도한다. 그러다 이열치열이라고 술로 술을 해장하기도하며 주당 중에 주당으로 거듭나기도 한다.



알아두면 좋을 내용을 줄로 그으면 어느새 책에 모든 페이지가 오선지처럼 줄투성이가 된다.




2. 진정한 주당의 탄생 


술을 좋아하는 이들 대부분은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고지곧대로 받아드린다. 사실 술을 어느 정도 먹느냐를 두고 자랑 삼지만 술을 잘 모른다. 술은 어떠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며 그 과정에선 무엇이 필요한지. 혹여 효모의 발효나 증류 정도를 알고 있더라도 효모가 어떻게 곡물이나 과일 등을 발효하는지 곡물엔 또 왜 맥아가 필요한지 자세히 아는 이는 극히 드물다. 어떤 상표의 맥주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최고의 맛이 난다고 하는데, 그것은 주당들에게는 한낱 주조회사의 카피라이터에 부과하다. 

그래, 술은 이미 술집에 있고 만들어지는 과정은 내 돈내고 먹으니 사버렸다고 치자.(사실 술의 탄생은 자연의 것이니까라고 핑계를 대자) 그런데 어디 그것 뿐인가. 이 근본도 모르는 술을 자기 몸에 넣어 몸이 의지에서 멀어지는 현상에 속수무책인 주당들은 그 원인을 더욱 모른다. 사실 이를 안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닐거라는 것을 주당들은 직감할 것이다. 전문적인 용어와 수많은 화학식들이 난무할 것 같다. 자, 이제 주당 중에 주당에서 주당의 정체성을 찾아 주당의 신(디오니소스의 동기동창급이라고나 할까)의 반열에 오를 기회가 왔다. 술을 과학이라는 깍대기에 끼워 파헤쳐낸 책이 그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바로『프루프 술의 과학』이 그 책이다. 어제의 내 주사(酒邪)의 민낯을 알고 싶다면 이책, 『프루프 술의 과학』을 권한다. 


책은 술의 생성 과정을 비교적 쉽고(사람에 따라선 분자식과 전문화학용어 등이 낯설기도 하겠지만) 상세히 서술하고 있다. 효모의 발효과정과 맥아와 코지의 역할, 발효된 것의 증류(맥주를 증류하면 위스키가 된다!), 증류의 기원(증류의 기원은 술의 자연사를 인류사로 바꾼 과학이다), 숙성으로 인한 맛과 향의 변화, 맛과 향의 기준과 도식화, 몸과 뇌에 미치는 술의 영향, 누구나 극복하고픈 다음날의 숙취의 원인과 숙취 없는 술, 곧 미래의 대체 알코올의 전망과 도전을 다루고 있다. 


와인을 맛나게 먹고 싶으면 와인을 알면 된다하여 실제 와인에 관한 책자를 두 권 읽고 와인의 맛을 달리 느꼈던 경험이 있다. 술의 정체성과 작용, 곧 술의 본모습을 알게 된다면 아마도 술의 맛과 그 의미를 만들어내지 않을까? 주당이라면 말이다.

“술은 두 가지로 나뉘지. 『프루프 술의 과학』를 읽기 전의 술과 『프루프 술의 과학』를 읽은 후의 술로 말이지.”라고 말하면서 술잔을 기울 것이다.